그리운 날은 오지 않는다. 구름이 흘러 지구의 반대편으로 간 것 처럼 홀연히 우주에 깃들어 버리고 만다. 선거일을 맞아 모처럼 호젓한 시간을 가지게 되어 여동생 내외와 욱수골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무슨 일을 벌일것 처럼 하늘은 음울한데 소나무 사이로 진달래는 부끄러운 듯 홍안을 들이민다. 산길을 가면서 우리 가족 일행은 모처럼 나드리 한 탓인지 스마트폰으로 사진찍기를 거듭한다.
문득, 수십년전에 구름처럼 흘러갔던 일들이 기억의 분자가 되어 몰려오더니 또렷이 영상을 뇌리에 남긴다. 높은 언덕위의 집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밤마을 나갔다가 돌아 오는 길은 대숲 사이로 나 있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때마다 노래를 불렀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같은 별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노래였지만 가사를 아는 노래는 죄다 불러대었다. 노래가 끝날 즈음이면 언덕위의 기와집 청마루에 도달했다.
그때, 마을엔 밤마다 노래부르는 아이로 소문이 나 있었다. 간이 큰 아이라는 야릇한 찬사를 덧붙였다. 요즘같으면 별장으로 손색이 없는 곳이지만, 왜 이런 외딴 집에 살아야 하는가라는 불만도 있었다.
여동생의 남편은 치과 치료탓으로 입이 꽤 부어 있어 멀리 오지 못하고 산어귀에 앉아 있었다. 동생을 만나면 같이 자라던 그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잦다. 어쩌면 철들자 따로 살게 된 사이에 옛날의 다정했던 관계를 회복이라도 하려는 심리 탓일 것이다.
그 집은 동네 사람들이 야불떼기라 불렀다. 어원은 모르나 사람들의 입에 익어 누구나 쉬이 알아듣는 호칭이었다.
요즈음 내가 느끼는 알 수 없는 외로움은 그때 야불떼기에 사는 아이같은 것이다.
마을에 잔치가 있는날 어둠이 들기 전에 일찍 집으로 가야 했던 심경처럼 외톨이가 된 느낌에 착잡할 때가 있다. 현대인이 흩어진 모래알이라고 누가 표현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굳이 누가 나를 따돌리는 일이 아님에도 '나는 혼자 있어도 외롭다'고 한 말처럼 끝임없이 나의 존재감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다.
십대였던 60년대 비록 한적한 집에 살았지만 용감하게 지내지 않았던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조금 불편한 생활이었어도 마음 한곁에 키우던 꿈은 항상 나를 행복하게 했었다. 새봄에 난초가 땅을 뚫고 싹을 튀우던 모습을 보면서 매년 신선한 힘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요즈음 자꾸 마음이 무거워지고 말수가 많아 진 것은 벌써 나이가 들어간다는 조급함 탓인지 모르겠다.
묵은 김치 한 사발로 밥을 먹던 행복이 어디가고 산해진미가 입에 맞지 않는 상황이 되었는지, 여름철 평상에 드러누워 한그루의 포도나무에서 알을 빼먹던 날들은 또 어디가고 비만이 되도록 먹어도 배부름을 못 느끼는지,
돌아보지 않고 줄곳 달려온 곳은 천국이 아닌 잡목들이 발목을 감아채는 길없는 산기슭이라 당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삶에 유토피아란 없던 것이고 먹어도 먹어도 목마른 소금물과 같은 것이었던가.
그래도 내가 절망하지 않고 하루를 살아야 하는 것은 마치 서 있어면 쓰러지는 자전거 같은 인생인 탓이다.
그 집은 지금 사라졌다. 아니 커다란 절벽이 되어 편안히 자리 잡았던 집터는 사라지고 포크레인 자국만이 수없이 찍혀있다. 부산에서 국회의원을 하던 마을 출신 인사가 구입하여 별장을 지으려 하다 매스컴을 타자 토공사를 하다 방치되어 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 집을 지었다한들 내겐 한갖 콘크리트 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었겠지만 추억은 그렇게 흔적도 남기지 아니하게 되었다.
잊지 못한다. 모든 것이 사라진다하여도 고집스럽게 내머리에 매달리는 그 아련한 날들을. 비온후 살구나무 고목아래에서 단물이 흘러나는 살구를 동생과 주어먹던 일들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계속>
여기에 바로 초고를 쓰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티가 많이 보일 것 같습니다만, 여기를 내 작업실로 한 것은 내글을 객관적으로 보며 쓸수 있는 점이 좋아서 입니다. 또, 읽어주는 분들이 나에게 격려가 되기도 합니다.
<이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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