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퍼 앞에서
이종욱
아침에는 시 한 편을 썼고 비오는 거리를 따라 차를 몰고 점심 약속을 지키려고 시내로 가서 한정식 한 그릇을 먹었다.
세무서에 잠시들러 일을 보고 빗줄기에 부숴지는 왕벚꽃의 짧은 생을 바라보며 사무실로 들어 온다.
주차장에는 차량들이 주차할 자리를 찾지 못해 빙빙 돌고 있다. 새로 생긴 건강지원센터 탓에 주차장이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겨우 조그마한 틈을 찾아 차를 주차시키는데 뒤따라온 차들이 성급하게도 주차할 시간을 기다려 주지 못한다.
조급한 마음에 일으킨 접촉사고, 범프를 조금 긁었는데 앞으로 벌어질 귀찮은 일들이 시나리오처럼 머리에 떠오른다.
휴지로 닦고 수세미로 닦으니 범프는 더욱 상채기만 커졌다. 이대로 달아날까. 잠시 고민을 하다 기다리는 손님 때문에 사무실에 올라와 앉으니 온 몸에서 땀이 난다. 손님의 이야기가 길어졌다. 나의 머리는 온통 지하주차장에 가있다. 할 수 없이 손님에게 양해를 구했다. 일을 저질러 두어 내려가 보아야 겠다며 같이 주차장으로 내려가며 이야기를 했다.
피해차량은 렌터카로 새차였고 전화번호는 없었다. 내 차의 상채기는 볼 겨를도 없다. 손님의 수첩에서 종이 한 장을 찢어 그의 의견대로 전화 번호를 적고 '범퍼 관계로 전화바랍니다.'라고 써두었다. 한결 마음이 편했다. 문제는 회피하면 자꾸 커지는 경향이 있는 것을 길지 않은 생을 통해서 깨달은 바다.
이 사건의 와중에서도 나는 글이 쓰고 싶었다. 이 절절한 심경을 적어 보고 싶은 것도 나르시즘의 일종일지 모르겠다. 이 일이 어떻게 전개될까. 지독한 인간에게 수치를 당하게 될까. 어떤 극적인 반전이 일어날까. 나는 창을 통하여 비구름에 휩싸인 와룡산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가는 고속도로 위에서야 그 전화를 받게 되었다. 목소리가 부드러워서 안도가 되었지만 그냥 넘어갈 일은 못되는 일이라 어떻게든 손실에 대해서 변상을 하겠노라고 말했다.
러브스토리의 첫페이지에 나오는 비틀즈를 좋아했다는 부분이 머리에서 떠올랐다. 머리가 아플수록 낭만적으로 되는 알 수 없는 현상이다. 그래, 꿈을 현실로 바꾼 스티브 잡스도 있었지. 그는 성공했지만 명을 다하지 못했지. 고속도로의 차량들은 더욱 빨라졌고 빗줄기는 멎어 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 그 전화벨이 울렸다. 사고 유발한 죄인으로 무조건 보상하겠노라하고 어느 사무실로 찾아가야하는지 물으니 바로 위층이란다. 바로 위층이면 후배 회사의 사무실이다.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 그 사무실에 들리니 그사람은 자리에 없고 후배가 사장자리에 앉아서 반갑게 맞이한다.
접촉사고 유발해서 왔노라 하니 싱긋 웃으며 부장인가 하는 그 사람을 불렀다. 어색한 모습으로 인사를 나누고 처리결과에 따라서 알려달라고 하며 차를 한잔 마신후 내려왔다.
한 세상 사노라면 슬픔도 즐거움도 모두 있는 것인데, 더 큰 사고에 비하면 이건 다행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한결 위로가 된다. 더우기 아는 사람 차를 고쳐주는데 억울함도 덜하였다.
며칠후 문자가 왔다. 최대한 비용이 덜 드는 곳을 찾아 수리했다며 계좌번호와 금액이 왔다. 감사하다는 답장과 함께 즉시 송금하고 나니 양심을 지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는 성경의 한 구절을 떠올리면서 이 스트레스 많이 주는 세상을 이겨나가는 지혜로 삼기로 한다.
<계속>
긴장감이 많이 죽었는것 같습니다. 며칠을 걸렀더니 벌써 감정이 다 식어서 말입니다.
<글빛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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