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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승부

대구기업 2012. 9. 29. 00:49

승부

 

이종욱

 

활엽수들은 마른 가지에 지난해 죽어간 잎들을 메달고 있을뿐, 새생명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침 공기를 가르며 노인들과 한바탕 게임을 벌인다. 겨울의 끝은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하는 듯 차가운 바람을 불어댄다.

 

지난 해 이 어른들과 말문을 트게 된 것은 배드민턴장 옆에 껍질을 벗고 반들반들한 몸통을 드러낸 배롱나무의 생사에 관한 일 때문이었다. 그 때, 하루 일과를 생각하면서 공원의 나무들 사이로 산책하던 중이었다. 생각에 빠진 나를 부르더니 이 나무가 살았는지 한 번 보라고 한다. 시체 검안을 하듯 나는 손으로 나무의 몸통을 스다듬어 보고 들여다 보았다. 이미 조그만 싹을 튀운 나무를 본 일이 있어, 무슨 예언가라도 된듯이 이 나무에게는 생명이 있다고 하였던 것이다.

나무는 보름이 지나 답하였다. 수백 다발의 꽃무리를 들고서 나는 건재하다고 외치고 있었다.  

 

일흔을 넘긴 어른들의 소일거리 정도로 생각했던 시합은 격렬하고 심각하게 진행되었다. 김씨 어른은 무슨 소득이 있는 일도 아닌데 승부욕이 세서 땅에 넘어지는 일이 잦았다. 아직 나이를 잊은 패기가 있어 얼굴이 긁혀도 아무일 없다며 손을 내져었다. 가끔은 함께 온 부부간에 셔틀콕이 아웃이네 인이네 하며 경기중 싸움으로 번지는 날도 종종 있었다.

경기를 하지 않을 때는 반갑게 맞아주며 희색이 낙낙하던 그 얼굴이 하이드 처럼 바뀌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상대편이 되어 그를 이겨도 얼굴이 달아 올라 있고, 같은 편이 되어 실수를 할 때면 귀가 따갑도록 지도를 받아야 했다. 

 

오바마의 자서전을 읽다가 그가 한국인에 특히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중에서 '한국인들은 온 가족이 하루에 열서넛 시간씩, 그리고 일주일에 7일씩 일합니다.' 흑인 빈민구제 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도저히 한국인과 싸워 이길수가 없다며 낙심하는 것이다.

그 승부는 아직 끝이 아닐 것이다. 그 사회가 한국인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하는 문제도 있을 테니까.

빠른 시일 내에 급성장을 한 나라의 국민들은 많은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를 얻어냈다.

 

나도 그들 중의 한 명이라, 단계적으로 무슨 일을 해내지 못하고 항상 조급하다. 더우기, 마치 이세상과의 승부인 듯 하루하루를 책과 시름하고 있다. 굳이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보잘것 없는 자존심이나 명예욕 그리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라는 것외에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내가 공부하는 도서관 열람실에는 오십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식은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며 사법고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생을 걸고 한판 승부를 겨루고 있는 것이다.

 

공원 한 모서리에서 하는 장기한판에도 목청을 돋우고 장기판이 날아가는 것을 보면 세상 모든 사람이 이기는 것에 길들여 져 있는 것이다. 세상은 이등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경험 법칙 아래 도무지 지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승리자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한다. 게임이 끝나도 사람들은 싸움을 그치지 않는 것이다.

승패가 없는 게임이나 삶은 모두 지루하다. 아무 의미도 없이 공을 하늘 높이 날리고 있어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즐거운 생활을 위해서는 지나간 것을 깨끗이 마무리하고 새로운 게임으로 들어가야 한다.

 

진정한 일등이라는 것은 애초에 세상에 없던 것이다. 빌게이츠, 이병철, 워렌버핏, 간디, 오바마...

그 누구가 일등이라 불리겠는가. 자신들의 희망을 어느정도 이루어낸 사람들이라 하겠다. 그 희망은 사소하고 잡다한 일을 하는 누구에게도 있는 것이다.

 

희망! 그것보다도 소망!

우리의 삶에는 가장 큰 승부가 있다.

이 일을 위하여 작은 승패에 집착하느니 사랑하여야 하고, 눈 앞의 이득에 눈을 부릅 뜨느니 양보하여야 한다.

그때 저 죽은 듯 있던 백일홍이 천지에 만발하리라. 그 꽃길을 노래하며 걸어가리라.

 

이른 아침에 내게 하이 클리어를 날리는 김씨 어른에게 깎듯이 인사한다. 얼굴이 활짝 펴진 얼굴로 내게 칭찬의 말을 해 줄것이고 백일홍은 새로운 생명에 대해 내게 이야기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옥토> 

 

 

 

 

 

출처 : 옥토사랑
글쓴이 : 이집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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